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선조광장본파는 1927년 정묘대동보에서 제14세 휘 항경(恒卿) 군수공의 제 삼남 휘 보(屋) 온성판관공(種城判官公)의 후손으로 수록되어 있으나 1970년 경술 11월에 전북(全北) 옥구군(次構郡) 미산면(米山面) 에 거주하는 본파 후손 박영래(朴永來)댁에서 가장보(家藏譜) 및 호 적단자(戶籍單子)가 발견되어 면밀히 조사한 바에 의하면
제7세 휘 문오(文晤) 면성부원군 제일자 휘 윤유(允瑜) 무안군(務安君•)의 직계 후손임이 판명되어 그 가장보(家藏譜)와 호적 단자의 내력을 재삼 검토한바 지금으로부터 삼백여년간 전래(傳來)한 것이 분명하며 제8세 휘 윤유 무안군의 직계 후손임이 확연히 인정된 것이다.
본파의 분포상황은 충남(忠南) 서천군(當川郡) 화양면(華陽面) 와초리 (瓦草里)와 전북(全北) 옥구군(次構郡) 임피면 미산리에 집단거주 하고 있다.
1971년 신해에 본파만이 파보를 간행한 바 있는데 21세 이후 자손이 462명이다.
본파에 있어 우리 무안박씨로 알아야 할 사실은 제7세 휘 문오(文晤) 면성부원군의 묘소가 여러대 각파 보첩에 실전(失傅)되었던 것인 데 실지로서는 서천군(靜川郡) 화양면(華陽面) 기복리(箕福里) 번기산 (番被山)에 모셔있고 산지 (山地) 이외에도 부원군 위토(位土)로써 논 (畓) 2,200평이 있어 그 소출(所出)로써 매년 본파 자손만이 세일제 (歲一祭)를 모셔왔다.
그러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백년간을 면성부 원군의 전체 후손이 알지 못했다는 것은 그간의 어떠한 이유로 그러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자손된 도리로써 지극히 송구(保權)한 일이 아닐 수 없다.
이후부터 면성부원군 소몽(所蒙)된 자손은 매년 세일 사 음3월15일에 다수 참사하여 추모(追慕)하는 정성을 다하여야 할 것이나 아직은 한산파에 대한 고증이 확인되지 않았으므로 차후 고증 후에 확정하기로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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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산파(韓山派) 파조(派祖) 휘(講) 단(植)
공(公)의 휘(講)는 단(權)이니 시조(始祖) 국자좨주공(國子祭酒公) 진승(進昇)의 9세손(九世孫)이고 무안군(務安君) 윤유(光瑜)의 아들이 다.
관(官)은 예조판서(禮普判書)이고 배위(配位)는 정경부인(貞敬夫 人) 이씨(李氏)이다.
1자(子)를 낳았으니 증룡(增龍)이요 관(官)은 호 조판서(戶普判書)이며
손(孫)은 성손(誠適)이니 관(官)이 대제학(大提 學) 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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